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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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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고향, 그리움 (강소천 선생이 주고 가신 세계)

‘꿈, 고향, 그리움’은 강소천 아동문학의 키워드입니다. 강소천 아동문학 전집(배영사 간행) 총 6권에 실린 111편의 동화 중에 이 세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동화는 거의 없습니다. 강소천 동화는 이 세 단어를 넣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짠 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시대의 문학은 그 시대인들의 삶을 표현합니다. 문학은 작가가 생존했던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학은 동시대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데 그치지만, 어떤 문학은 그들의 슬픔과 기쁨과 소망을 쟁취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학연구에서 이런 종류의 문학을 열쇠의 문학(이재선, 한국문학사)이 라고 부릅니다.

한국문학사에서 볼 때 <홍길동전>은 조선조 서얼차대의 불합리한 사회적 관습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고, <춘향전>은 여성이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영국의 <검은 램프>는 영국 여성이 세계 최초로 참정권을 얻는 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엉클 톰즈 캐빈>은 흑인노예 해방을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에서 볼 때, 문학작품은 새로운 사회 지평 을 여는 열쇠의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문학은 사회적인 제도 뿐 아니라 과학과 발명의 문을 여는 열쇠의 역할도 해왔습니다. <해저 2만리>는 잠수함을 만드는 열쇠가 되었고, <기구를 타고 80일>은 비행기 발명에 공헌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의 열쇠의 기능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양탄자>가 비행기 발명의 열쇠가 되었고, <아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자동문의 열쇠가 되었으며, <나무꾼과 선녀>의 수직 상승의 모티브가 엘리베이터의 열쇠가 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시각을 중심으로 하여 저는 오늘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열쇠의 문학’이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의 우리나라 아동문학 연구사는 강소천 동화를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으로 ‘교훈성’과 ‘환상성’을 들고 있습니다.
저도 1980년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기서 <꿈을 찍는 사진관>의 작품 내재적 연구가 아닌 작품 외재적 연구인 독자의 수용현상과 사회적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강소천 동화의 환상성’이 독자에게 주는 ‘수용미학적 가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 작품을 썼건 그것은 독자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독자는 오직 작품하고만 소통할 뿐이지, 작가와 소통하지는 않습니다. 독자는 작품을 만날 뿐, 작가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일단 발표된 작품은 독자의 것이지 작가의 것은 아닙니다. 설령 작가의 의도를 독자가 알고 있다 하여도 그것이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매우 미미합니다. 독자는 오직 자신의 감지력, 어휘력, 상상력, 이해력, 추리력 비판력, 판단력 등을 동원 하여 그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뿐입니다. 독자가 어떻게 해석하건 그것은 독자의 자유이자 권리입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이렇게 독자에 따라 다르며,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르게 마련입니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시간과 공간 을 초월하여 오래 동안 읽혀지고,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비평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강소천의 환상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에 등장하는 ‘상실과 만남’의 모티브는 가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해결됩니다. 이 가상 의 세계는 현실이라는 공간에 시간이라는 축을 보탠 4차원의 세계이지만 소천의 동화 속에서는 단순한 시간인 과거와 미래만이 아닌 창조된 시간인 5차원의 세계가 등장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이버 공간입니다. 처음에 인터넷이 나왔을 때 우리는 지구상에는 분명히 없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바로 이런 가상의 공간 에 대한 믿음이 1950년대 강소천 동화 속에는 이미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꿈을 찍는 사진관> 속에 나오는 ‘사진관’ 입니 다. 그는 높이 날아서, 더 멀리를 볼 수 있었고, 우주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우선 <꿈을 찍는 사진관>이 나타났던 1950년대의 우리 사회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고, 3년 동안에 남한 측에서만 60만명이 죽고, 80만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00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겼 고, 10만명의 전쟁고아가 생겨났고, 30만명의 여인들이 전쟁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남북을 합치면 피해는 두 배가 될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1953년 휴전에 발표되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학생들에게 휴전 반대 시가 행진을 시켰고, 북진통 일을 외치게 했습니다. 당시 국민적 열망은 북진통일을 하여 남북이 한나라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간절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 발표되었습니다.

1950년대의 어린이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부모나 가족을 잃은 아이가 허다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실향민의 아이들은 삶의 뿌리 가 흔들리는 불안한 생활을 했습니다. 학교가 폭격을 당해 창고나 기차칸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내복을 입지 못해 겨울이면 덜덜 떨었습니다. 불행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없었습니다. 꿈을 꾸는 아이들을 보면 어른들은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고 충고했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는 눈물짓는 아이들, 한숨짓는 아이들이 등장했고, 어린 독자들 도 따라서 눈물짓고 한숨짓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에게 희망찬 미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꿈꿀 기회가 없었기에 당연히 꿈꾸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이런 전후 시대인 1954년에 강소천의<꿈을 찍는 사진관> 이 어린이들 앞에 날아왔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 동화 는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문학의 역사에서 볼 때 당대의 독자에게 환영받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습니다. 당대 독자들의 필요와 분위기를 담지 못한 작품은 독자들의 기대 지평과 만나지 못합니다. 먼 훗날 그 기대 지평을 만족시킬 독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상의 <날개>, 허만 멜빌의 <백경>이 그런 예입니다.
그런데 강소천의 동화는 당시 1950년대 독자들의 기대 지평과 바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전에 많은 독자들을 가진 행복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북더기 속에서 알곡을 골라먹는 병아리처럼,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쟁취하는 속성이 있 습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강소천 동화에서 ‘꿈꾸는 방식’을 배웠던 것입니다. 암울한 현실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마술을 강소천 동화 속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1950년대에 강소천 동화의 애독자였던 한 어린이의 삶을 예로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1950년대에 강소천 동화를 읽고 자란 남미영이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이 발표된 1954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그 아이는 충주군청 한구석에 자리 잡은 조그만 간이 도서관에서 이 동화를 발견했습니다.
6.25에 아버지를 잃은 그 아이는 가난했고, 매일 점심을 굶었으며, 어른들로부터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은 터라 매우 슬펐습니다. 건강도 최악이었습니다. 손발에 동상이 걸려 진물이 나왔는데, 보는 이마다 손발을 잘라야 할 것이 라며 혀를 찼습니다. 이렇게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였지만,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꼭 그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그런 사진관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즉 6.25에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꿈은 점점 야무져 가면서 ‘동화책만 실컷 읽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갖겠다’는 꿈까지 꾸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꿈을 들어본 어머니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하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중학생인 오빠는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한다”고 머리에 알밤을 주면서 빌려온 동화책마저 압수해 갔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에게 상의했는데, 선생님은 아이에게 “도서관 사서가 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며칠 후에 “도서관 사서는 책 훔쳐가는 사람도 감시해야 한다.”는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고는 ‘동화책만 실컷 읽고도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한 30년이 흐른 어느 날, 30대 후반의 여자가 된 그 아이는 어린 시절의 꿈인 ‘동화책만 실컷 읽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 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전의 그 아이는 이미 동화작가가 되었고, 동화연구를 하면 서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한국 우수도서선정위원으로 매일 작품을 읽어야 했고, 국책 연구소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의 개발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꿈이란 이렇게 이루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는 독자들의 삶에 꿈을 주고,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동화작가는 인류를 꿈꾸게 만드는 사람들이고, 독자들은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 입니다. 소천은 1956년 <새교육>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아동들은 꿈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 꿈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층 더 커다란 꿈을 주어야 하지 않는 가?...(중략)...커다란 꿈, 실현할 수 있는 꿈, 실현하는 꿈을 주자는 것이다.’

1950년대에 소천이 꾼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1964년, <아기 송아지>로 등단을 하고 동화를 써오던 저는 항상 무언가 미진하고 불안했습니다. 바로 ‘내가 써야할 것은 이게 아닌데....’하는 불안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1990년대에 마음속에 하나의 문학의 화두가 싹텄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34회 소천문학상을 받은 <소년병과 들국화>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쓰고 다소간 만족했습니다. 작품을 쓰고 6-7년 동안 서랍 속에 묵혀 두었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일한 후에 맞이하는 휴식의 달콤함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쓴 <소년병과 들국화>의 구조가 바로 강소천 동화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 얻었던 ‘잃음과 만남의 구조’이며, 남북 이산가족 이야기라는 사실을. 소천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창조하고, 그곳을 찾아가서 꿈을 찍지만, 소천과 삶의 배경이 다른 나는 치열한 싸움터에 서있는 느티나무 속에서 두 병사를 만나게 함으로써 만남의 꿈을 이루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소년병과 들국화>의 ‘느티나무’는 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소천이 1954년에 제시한 ‘꿈을 찍는 사진관’의 현실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강소천은 우리 국민에게 ‘꿈을 찍는 사진관’에 대한 믿음을 주었 고, 작품을 통하여 우리나라 어린이, 젊은이, 혹은 어른들은 각자의 가슴속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꿈의 화두를 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후에 그 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많은 동화들이 창작되고 있습니다. 독자가 많은 인기 작품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지만, 동화는 계속 창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기와 비인기에 앞서 오늘의 작가들은 자신이 만들어 내는 동화가 오늘의 어린이, 혹은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꿈을 주게 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꿈인지, 없어도 될 꿈인지, 그들을 성장시키는 꿈인지 아니면 그들을 타락시키는 꿈인지. 다행히도 오늘의 어린이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잃어버린 고향도 없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한국아동문학 줄 수 있는 꿈다운 꿈, 위대한 꿈은 무엇일까요?

저자: 남미영
대학원에서 강소천 선생의 동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으셨고 다시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동화작가이십니다. 교육개발원 연구원으로 일하시면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여 2001년에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