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강소천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을 말하다
  • ABOUT 강소천
  • 추모글

추모글

//동심으로 외친 항일(抗日)의 함성 (강소천 선생의 동시 세계)

1. 소천의 아동문학은 동시 창작에서

小泉(1915-1963)은 동시와 동화 두 장르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나, 동요 창작에서부터 아동문학을 시작하여 일제 말기인 1941년 에 동요시집 ‘호박꽃 초롱’을 발간함으로써 우리 아동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소천은 습작 초기에 본명인姜龍律, 또는 필명인 姜小泉으로 작품을 발표하다가 필명만을 쓰게 된다. 그가 ‘호박꽃 초롱’을 상재하던 때까지 어린이 잡지에 발표한 동시 작품은 다음과 같다.

봄이 왓다 | 무궁화에 벌나비 | 길가엣 어름판 | 얼골 몰으는 동무에게 | 울어내요 불어내요 |
호박꽃과 반딧불 | 코스모스꽃 | 이상한 노래 | 까치야 | 닭 | 봄비 |지도 | 달 밤 |전등과 애기별


2. 동시의 시작은 무궁화의 노래에서

소천의 동요가 처음 활자화된 것은 1931년 <신소년>지였는데, 같은 책 17쪽에 ‘봄이왓다’, 36쪽에 ‘무궁화에 벌나비’ 등 두 편이 발표되었다. 이때 소천의 나이는 16세. 보통학교를 나와, 함흥 영생고보에 입학하기 이전(1930년 고원 보통학교 졸업, 1937년 영생고보 졸업.)의 연대로 추정된다. 아래의 발표된 1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궁화에 벌나비 / 고원 강용율

이몸은 무궁화에 벌이랍니다
고운꼿 피여나라 노래부르며
이꼿서 저꼿으로 날러다니는
조고만 무궁화에 벌이랍니다.

이몸은 무궁화에 나비랍니다
고운꼿 피여나라 춤을추면서
이꼿서 저꼿으로 날러다니는
조그만 무궁화에 나비랍니다.

우리의 노랫소리 들리건만은
귀여운 무궁화는 피지안어요
그몹쓸 찬바람이 무서웁다고
귀여운 무궁화는 피지안어요

일제는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 상징물인 태극기와 무궁화를 철저히 단속하였다. 무궁화를 심지 못하게 하였으며, 심은 무궁화를 캐어 버리게 하였다. 무궁화를 자수로 표현하는 것이나, 노래하는 것을 금하였고, 이를 어기면 감옥에 가두 고, 잔혹한 고문을 하였다. 이러한 단속 때문에 일제하에서는 무궁화가 시의 소재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유일한 시가 소천의 동요 ‘무궁화에 벌나비’이다. 이것은 한글 말살정책이 극악에 이르렀을 때 모국어로 동요시집 ‘호박꽃 초롱’을 상재하는 소천의 항일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에서 소천은 자신이 무궁화임을 내세운다. 자신이 조선인 이라는 뜻이다. 그것도 그저 그러한 조선인이 아니라 무궁화를 지키는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이를, 무궁화를 피우고 씨를 맺게 하 기 위해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에 비유하고 있다. 무궁화를 피움은 조국 독립이다. 소천의 문학에는 가슴에 끓어오르는 독립정신 이 배어 있었다. 그의 동시는 민족문학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노랫소리는 무궁화를 곁들인 애국가의 후렴일 것이다.
이러한 노래가 들리건만 귀여운 무궁화는 피지 못한다. 그 몹쓸 찬바람 때문이다. 그 찬바람은 일제의 강압정치이다.
소천의 동시/동요는 이처럼 일제에 대한 민족 저항을 몸부림으로 보여준 강한 이미지의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3. 서사동시 ‘전등과 애기별’의 스케일

당시 <신소년>은 카프(KAPF)화된 아동잡지였다. 그러나 소천은 이런 경향에 휘말리지 않고 독립사상을 내면에 담은 건강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1932년에는 <어린이>에 1편의 동요가 뽑혔는데, 소파 방정환 선생의 사후인 이때는 <어린이>도 카프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천의 동요는 비교적 이를 잘 피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습작기의 작품이어서 기복이 심했다. 첫 두 작품은 가작이었으나 나머지는 작품성이 약했다. 그러다가 기성인 대우를 받으면서 지면을 얻게 되고 작품도 좋아진다. 이후 소천의 위치는 당당해졌다. 여기에다 단편 동화‘감과 꿀’ (아이생활, 1940, 2월호)에 이어, 1940년 <아이생활> 10월호부터 장편 동화 ‘히성이의 두 아들’을 5월에 걸쳐 연재하게 된다. 이로부터 소천은 동시뿐만 아니라 동화에도 역량이 있음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동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그리고 잡지에 발표한 서사시 ‘전등과 애기별’(아이생활. 1940, 8월호)에서 그의 작품 스케일을 알 수 있다.

전등과 애기별 / 강소천

거리의 전등들은
하늘에 올라가 보고 싶단다.

-내가 만일 하늘에 올라갈수만 있다면
나는 하늘에 올라가 저 보름달에게
옥토끼 이야기를 들려달라구 그럴텐데.

-내가 만일 하늘에 올라갈수만 있다면
나는 하늘에 올라가 저 애기별들과 가치
숨바꼭질을 하며 재미있게 놀아 볼텐데.

-내가 만일 하늘에 올라갈수만 있다면
하늘에 올라가 저 구름 이불을 덮고
포근이 하롯밤 자고 올텐데.

거리의 전등들은
하늘의 별들이 부럽단다.

하늘엔 하늘엔 못 올라가고
깜박이는 별들만 헤여 본단다.

거리의 전등들은
하늘의 별들이 되어보고싶단다.

하늘의 애기별들은
세상에 나려와 보고싶단다.

-내가 만일 세상에 나려갈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 나려가 어여쁜 아가씨들의
고운 노래를 들어본텐데.

-내가 만일 세상에 나려갈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 나려 노름깐 상점에가서
어여쁜 인형을 사가지고 올텐데.

-내가 만일 세상에 나려갈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 나려가 별성(星)자 이름가진
나와 나이 같은 애기를 만나볼텐데.

하늘의 애기 별들은
거리의 전등들이 부럽단다.

세상엔 세상엔 못 나려 오고
빤짝이는 전등만 헤여 본단다.

하늘의 애기별들은
거리의 전등이 되여보고싶단다.

소천의 이 서사시는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되어보고 싶은 거리의 전등과, 세상에 내려와 전등이 되어, 인간과 가까워지고 싶은 애기별의 소망을 대비시켜 놓았다. 별과 전등은 빛을 내는 점에서 동일 성격이다.
그러나 위치에서는 서로 상대되는 자리에 놓여 있다. 이러한 대위법은 이전까지의 동시에서 없던 것으로 소천의 개성적인 구성이었다. 그 보다는 시의 내면이 전등에서 시작하여 별나라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이 다음 시대의 동시에서 스케일과 소재 확대에 영향을 주게 된다.


4. ‘호박꽃 초롱’은 항일의 함성

일제는 1939년 12월 조선총독부를 통해 창씨개명령과, 미곡배급조정령을 공포한다. 교과서에서 조선어과를 폐지하고, 일본어 상용을 강요한다. 이러는 가운데 1940년 8월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폐간된다. 1941년 2월 조선사상범 예방 구급령을 내어 놓는다. 이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12월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어린이 잡지 모두가 쓰러진 이때에, <아이생활>만 홀로 버티면서 1939년부터는 <황국신민 서사>를 매호 실어야 했고 1941부터는 日文을 섞은 기사를 내보내어야 했다. 소천의 동요시집 ‘호박꽃 초롱’은 이러한 조국수난 암흑기에 우리의 문화 활동이 거의 정지된 상태에서 출간되었다. 이는 일제를 향한 외침이며 독립운동이었던 것이다. 白石 시인의 ‘호박꽃초롱 서시’를 앞세우고, 게재 작품은 동요, 동시 33편과 동화 2편이었다. 발행일은 1941년 2월 10일.
어린이 잡지에 발표되었던 작품 중 ‘닭’, ‘지도’, ‘달밤’, ‘전등과 애기별’을 제외한 작품은 작품성이 약하므로 싣지 않았다.
33편의 동요, 동시 중 29편을 신작으로 채운 것이다. ‘닭’, ‘이슬비의 속삭임’, ‘호박꽃 초롱’, 당선동화로 잘못 알려진 ‘버드나무 열 매’, 그리고 ‘옛날 얘기’, ‘봄바람’, ‘잠자리’, ‘바람’, ‘조그만 하늘’, ‘겨울 밤’, ‘전등과 애기별’ 등 명작들은 거의 6.25 후, 교과서에 실려서 알려진 작품이다. 이 중 주제시 ‘호박꽃 초롱’을 살펴보자.

호박꽃 초롱 / 강소천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
초롱 만들지.
초롱 만들지.
반딧불을 잡아선
무엇에 쓰나.
무엇에 쓰나.

우리 애기 초롱에
촛불 켜 주지.
촛불 켜 주지.

호박꽃은 농촌의 집 둘레나, 울타리에 덩굴손으로 기어 다니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꽃이다. 반딧불은 여름날 저녁에 불을 달고 농촌의 마당과 텃밭과 울타리 위를 날아다니는 친근한 곤충이었다.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켜서 초롱을 만들고 그 안에 촛불을 켠다. 초롱은 불을 밝히는 도구다. 호박꽃은 초롱으로 반딧불은 촛불로 자리 바뀜이 됨으로써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5. 小泉 동시의 역사적 의의

이러한 동요시집 ‘호박꽃 초롱’은 또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호박꽃 초롱’이 출간될 당시는 일제에 의한 동화 통치가 극한에 이르렀던 만큼, 모국어로 시를 빚는다는 자체가 독립운동이었다. 소천의 ‘호박꽃 초롱’은 ‘윤석중 동요집’(1931. 신구서림), '설강 동요집'(1933. 한성도서) 등에 이은 한국 현대 아동문학사상 제5의 율문집이었지만 일제말에 마지막으로 아동문학을 지킨 작품집이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전기한 바와 같이 이 시대는 모국어로 글을 창작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별 혐의 없이도 치안유지법의 올가미를 씌우는 시대였다. 한국 아동문학 발생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본다면, 소천의 ‘호박꽃 초롱’ 발행 또한 독립운동 그것 이었다. 독립운동의 횃불이었던 것이다. 소천 동요의 시작이 무궁화 예찬이었다는 데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사실, 일제로부터 절개를 지키고 공산주의에 이끌리지 않은 이 시대의 작가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소천은 일제말기에 모국어로써 독립을 외쳤고 공산독제에서 탈출, 이역에서 망향의 한을 안고 40대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의 문학은 오직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민족문학이었던 것이다.


6. 小泉 동시의 동시사적 위치

‘호박꽃 초롱’에 실은 30여 편의 율문은 정형시로 보이는 작품이 적다. ‘이슬비의 속삭임’, ‘도토리’, ‘버드나무 열매’ 등 몇 편만 동요의 요건인 분절 대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 외는 거의 자유시다. 그러므로 소천은 동요의 자유시화에 공헌한 것이다. 소재로는 잠자리 소 같은 동물이나, 호박줄 오동나무 방울 같은 식물을 중심한 자연물이 약20편, ‘숨바꼭질’ 등 생활 테마가 약 8편, 그 중에는 ‘달리아’처럼 소품도 몇 편 있고, 동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순이 무덤’같은 소재도 있다. 그 중 ‘호박꽃 초롱’, ‘이슬비의 속삭임’, ‘달밤’, ‘닭’, ‘옛날 얘기’, ‘잠자리’, ‘바람’, ‘조그만 하늘’, ‘겨울’, ‘전등과 애기별’ 등은 고전으로 남을 명작이다.
‘호박꽃 초롱’에서는 연의 끝 행을 한 번씩 반복함으로써 그 효과를 노렸다.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이슬비의 속삭임’은 이슬비를 3개의 화자로 나눔으로써 효과를 얻었다. 작품성이 뛰어나다. ‘닭’은 닭의 물먹는 동작을 통해 하늘과 구름에 이르는 무한대의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천 동시의 대표 작품을 들자면 ‘호박꽃 초롱’, ‘이슬비의 속삭임’, ‘닭’을 내세울 수 있다. 이 세 편은 작품성이 같이 두드러져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주제의 시 ‘호박꽃 초롱’을 맨 앞에 놓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한국 정서에서만 씌여질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때, 이 작품이 민요로 잘못 채집되어 임동권 채집민요1492호로 분류된 일이 있다. 이는 채집자의 잘못으로 판명되었다. 소천이 현대 동시에서 가장 영향을 준 것은 대화법의 개발이다. ‘잠자리’는 7연 중 3연이 나뭇가지와 잠자리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까딱 까딱’ 3연과 ‘바람’ 8연은 대화만으로 된 문답법구성 이다. 이런 구성에서 소천의 개성이 보인다. 소천이 개발한 시법이었다.

잠자리 / 강소천

빨-간 잠자리 한 마리가
가-는 나뭇가지 끝에 날러 와서

-- 조금 앉었다 가랍니까?
-- 안돼-요.

-- 조금만 앉었다 갈게요.
-- 안돼-

-- 조금만......
-- 글세 안된다는데 그래!

앉을려다간 못 앉구
또 앉을려다간 못 앉구

그러다 그러다 잠자리는
다른데루 날러가 버렸습니다.

(가을 바람이 불고 불고 또 불었다.)

‘잠자리’1편은 잠자리 생태의 관찰에서 포착된 테마이다. 잠자리가 나뭇가지에 앉을 때는 앉으려는 동작을 되풀이한다. 이것을 나뭇가지와의 대화로 형상화하였다. 기발한 착상이다. 이러한 시법은 소천이 후대에 물려준 유산인 것이다.

‘호박꽃 초롱’에 실은 30여 편의 동시는 음수율을 떠난 동시. 시세계에 몰입한 자세로 창작한 동시, 세공적 기교를 부리지 않고 소박한 직관 그대로 티 없이 표현하고 있는 시로 평가되고 있다. (이재철, ‘한국현대아동문학사’)

‘호박꽃 초롱’은 한국 동시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다.

저자:신현득
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가 당선된 이래 우리 정서가 넘치는 빼어난 동시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교원생활을 거쳐 소년한국 편집국에서 일하셨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전공, ‘동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학구적인 동시인으로 제 17회 소천아동문학상 수상하셨습니다.